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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출향향우인 이지화(경남향교재단 사무국장)씨 부인이영희씨 성균관장 효부상 수상

성균관에서 2015년 9월 18일 추기석전 봉행 후 ‘오늘의 孝烈忠義賞’ 시상식에서 昌原市 義昌區 용지로289번길 16 (士林洞) 이영희씨가 효부상을 수상하였다.
인터넷함양신문 / 1551woo@hanmail.net입력 : 2015년 10월 12일
창원출향향우인 이지화(경남향교재단 사무국장)씨 부인이영희씨 성균관장 효부상 수상

123ⓒ 인터넷함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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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李英熙)씨는 1950년 6남매(3남3여) 중 장녀로 태어나서 1973년 중매로 8남매(5남3여) 중 장남인 남편과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쓰고 전통 혼례를 하였으며, 시가는 윗대에서 물려받은 것 없이 8식구가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가난한 농촌의 가정이었다. 남편은 직장 관계로 객지(울산)에 있었는데 남편을 따라가지 않고 남편이 없는 농촌(함양)의 시댁에서 시가의 풍습도 배우고 시댁의 친척들과 함께 지내면서 얼굴도 익히고 정도 나누며 맏며느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다는 일념으로 2년 동안 시부모님 곁에서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배우며 지냈다.

시집을 온지 2년이 지난 후 남편을 따라 울산에서 방문 앞에 짚으로 가려 놓아 비가 뿌리면 그릇이 젖고 바람이 불면 먼지투성이인 부엌도 없이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하여 2년이 지난 후, 남편이 직장을 창원으로 옮겨서도 단칸방에 간혹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서 오시면 함께 주무시고 살면서 두 아들을 낳고 절약을 하고 또 절약을 하여 시동생들 학비를 비롯하여 학용품 등 생활비를 시댁으로 보내드렸다.

살림을 시작한지 두해가 지나 밑으로 시동생 2명과 친정 남동생을 번갈아가며 8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8남매 맏이이니까 시동생 시누이 혼사도 시부모님 명을 받아 주선하여 혼인해서 분가할 때까지 함께 생활하였다.

사아버님 회갑에는 8남매가 합심하여 친인척은 물론 60여 호가 살고 있는 동네 어르신을 초청하여 소연을 베풀고 조그마한 선물을 나누어 드리고, 시어머님 회갑에도 5형제가 합심하여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 잔치를 하고 이튼 날 일가 친인척에게 관광버스로 신라의 고도 경주 유적지를 관광시켜드리고 조그마한 선물을 나누어 드렸다.

시부모님께서 한평생을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시면서 함께 여행 한번 한 적이 없어 시아버님 고희에는 두 분을 2박3일 제주도 관광을 다녀오시도록 하여드렸고, 시어머님 칠순에는 5형제가 합심하여 역시 두 분을 9박10일 일본 등 동남아 5개국 해외여행을 다녀오시도록 주선하여 드렸다.

시부모님이 8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기 위해 농촌에서 새벽 별을 보고 들로 나가 저녁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여 동네사람들이 “살고잡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농사일을 무리하게 많이 한 관계로 연세가 많아지면서 몸이 쇠약해 편찮으시는 횟수가 잦아 70평생을 살아오신 고향에서 뒤가 돌아 보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산천을 뒤로하고 눈물을 삼키는 시부모님을 1987년 이곳 창원으로 모셔 조그마한 집을 마련 합가하여 20여년간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시부모님께서 인자하신 모습으로 설, 추석 명절 음식과 바느질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자상하게 가르쳐주셔서 많이 배우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고부간의 갈등은 커녕 한 번도 꾸중을 하시거나 얼굴 한번 찌푸리신 적이 없으며 오히려 아껴주시고 귀여워해 주시니까 며느리로서는 더 조심스럽고 존경스러우며 시부모님 곁으로 더 다가가고 싶어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면 언제나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 방으로 가서 시부모님과 웃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시부모님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방을 나온다.

시부모님께서는 없는 살림에 절약하고 노력하여 자식들을 공부시키며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자식들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여 아들 다섯 모두 공무원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며 근무하다 남편은 서기관으로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43년을 공직에서 봉직하였다.

막내시동생이 결혼하던 다음달부터 5형제가 매월 조금씩 모으는 5형제 부부 계를 하면서 두 달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5형제 전 가족이 5형제 집을 돌아가면서 집에서 모여 간단하게 식사도 하고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데 그것을 시부모님께서 매우 좋아하신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지금까지도 5형제 전 가족이 두 달마다 돌아가며 집에서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우애의 정을 나눈다.

시부모님 생신에는 생신 당일 아침에 반드시 큰아들 내외가 만수무강하시라며 문 밖에서 큰절을 올리고 생신 상을 차려드리며, 8남매는 직장관계로 생신 바로 앞 토요일에 큰아들 집에서 8남매 식구 30여명이 모여 시부모님 생신을 축하드리고 큰 절을 올리며 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시부모님께서 결혼 60주년이 되시는 해에는 회혼례를 올려 드리려고 모든 준비를 하였으나 시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큰사위가 먼저 저세상으로 갔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시며 극구 반대하셔서 8남매 전 가족이 모여 간소하게 소연만 베풀어 드렸다.

설 추석 명절이 되면 밑으로 아들 4형제 전 가족이 명절 안날 저녁을 먹고 시부모님이 계시는 큰아들 집에 오면 밤늦게까지 시부모님이 아들 며느리 10명을 데리고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하시며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웃고 즐기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23명이 한집에서 누워 자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시부모님이 너무너무 좋아하시고 흐뭇해하신다.

그뿐이 아니고 설 추석날 차례를 모시고 나면 간단한 점심 준비를 하여 시부모님과 전 가족이 왕복 8백리길인 고향 함양의 선산으로 가서 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시조부모님 묘소에서 중식을 하고 고향 동네 친척들도 뵈옵고, 다시 시부모님이 계시는 창원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웃음꽃을 피우다가 밤 11시가 넘어야 시동생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식사를 간식까지 포함하면 23명이 무려 7끼를 먹는다고 하니 맏며느리로서의 책임과 고충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8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께 4계절 매일같이 하루 3끼 따뜻한 밥을 지어서 드리고, 형제자매도 많고 친인척도 많으니까 손님이 떨어질 날 없이 많이 드나들어 한 달에 쌀 80kg 한가마니가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며,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오히려 사람 사는 집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야 좋다고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 한다.
123ⓒ 인터넷함양신문

낮으로 시부모님과 같이 있는 시간에는 말동무는 물론 손 발 어깨를 맛사지도 해드리고 가끔 산책도 하며 남편이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관광을 많이 다녀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며, 노인회관에서도 이번에는 어디에 갔다 왔느냐고 하며 저 집 늙은이 부부는 복 많은 늙은이라 아들 내외가 주말이면 모시고 다니면서 구경시켜드리고 맛있는 것 사드리고 제주도와 해외여행까지 시켜드린다며 부러움과 며느리의 마음가짐에 칭찬이 많았다.

그렇게 웃음꽃이 피고 오손 도손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지내던 중 갑자기 이 가정에 청천벽력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데, 시아버지께서 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넘나들며 10여년간 병원과 집을 오가는 동안 시어머니께서도 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간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시부모님께서 병원의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에서 입원해 있은 동안에 하루도 그른 적이 없이 아침 7시30분이면 병실에 도착하여 오후 7시30분까지 주간 12시간을 시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이상 온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 드려, 주위의 환자는 등창이 심하게 나는데 시부모님은 깨끗하였으며 말동무는 물론 맛사지를 해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모든 일을 긍정적이고 항상 웃으면서 밝은 모습으로 실행하여 착한 며느리로 간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주위에서는 물론 거주하는 경로당에서 요즘 보기 드문 참된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경로당에서 그 집 이야기만 나오면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효자효부라고 하며 상이라도 주어야한다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병실에 오후 7시30분부터 아침 7시30분까지 야간에는 남편의 5형제가 돌아가며 오랜 기간 정성을 다해 극진한 병간호를 하여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았다.

시부모님이 조금 차도가 있어 병원에서 일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와 있을 때에도 병원에서보다도 더 극진한 간호로 모시고 시부모님 식사도 원기회복에 좋다는 것을 찾아다니며 해드려 건강이 많이 좋아지고, 또한 목욕을 큰며느리가 수년을 남편과 같이 닷새가 멀다하고 시켜드려 친인척이 병문안을 와서 보고 가시면서 “집에 연세 많으신 환자가 수년을 있어도 환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옷이나 방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았다.”라고 칭찬을 한다.

그러케 병원과 집을 오가며 10년이 지나가던 7월 한여름 86세에 영영 뵈올 수 없는 시아버지의 임종을 큰며느리 혼자 병실을 지키며 맞이하고 장시간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병실의 간호사들까지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시어머님께서도 병실에서 85세인 이듬해에 보고 싶은 시아버지 곁으로 가셔서 며느리로서는 2년 사이에 시부모님을 모두 잃은 슬픔에 몸져누워 병원신세까지 졌다.

지금까지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정성으로 두 달에 한번 정도로 편도 4백리길 시부모님의 양지바른 묘소를 다니면서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빌며 슬픔을 달래고 산소에 생전에 좋아하시던 꽃과 나무도 심고 잡풀 없이 깨끗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다고 겸손해 한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부터 지금까지 며느리가 시부모님이 입던 옷이나 쓰시던 유품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 정돈하여 곁에 두고 큰아들 내외가 시부모님께서 입으시던 한복과 모시 옷 같은 옷은 입겠다고 하며, 가끔 시부모님이 생각나면 옷과 유품을 내어보면서 울먹이기도 한다.

남편이 장남이라 집에서 시부모님 제사와 설 추석 차례를 모시는데 식구도 많고 친척들도 많이 오셔서 제사상도 푸짐하게 차리고 먹을 음식도 많이 준비하여 참석한 친척들이 맏며느리 통이 크다며 “음식을 넉넉하게 마련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복 많이 받겠다.”라는 농담을 하며 칭찬과 위로를 한다.

시부모님과 합가를 하면서부터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남편이 자기 생일날 아침이 되면 구로일(劬勞日)이라 하여 아들 며느리가 같이 문 밖에서 큰절을 올리면서 낳아주시고, 입혀주시고, 길러주시고, 공부시켜주시고, 배필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이 은혜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할 길이 없다고 눈시울을 적시며 아버님 두 손을 꽉 잡아드리고 어머님에게는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남편이 자기 생일에 왕복 8백리길 시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같이 가자고 하여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쌍분으로 모신 산소에 도착하여 남편이 아버님 묘소 봉분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아버지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큰아들 큰며느리 아버지가 보고 싶어 왔습니다.”라고 고하고 어머님 묘소 봉분에서도 아버님 묘소에서와 같이 말씀드린 후 묘소 주위를 살피고 성묘를 한 후 한참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돌아설 때에는 남편이 시부모님 묘소 봉분에 얼굴을 묻고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이 생전에 불효를 많이 하였는데 용서하시고, 이승에서 힘들고 어렵게 사셨는데 저승에 좋은 곳에 가셔서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 해놓고 또 “8남매 가정에 아무 탈 업고 손자 손녀 모두 바르게 잘 자라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같이 흘리며 시부모님 두 분께 자주 뵙겠다는 약속을 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시부모님을 생각하며 평소에 시부모님께서 다니시던 노인회관을 수시로 조그마한 정성으로 마련한 음식이나 과일 등을 가지고 방문하여 식사 준비도 도와드리고 있으며, 노인들이 계시는 복지회관과 요양원을 주위 동료들과 같이 다니면서 청소도 해드리고 목욕도 시켜 드리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이 조사한 내용 외에 효행이 많이 있으나 전부 기록하지 못하였으며, 큰며느리가 고개를 숙이며 웃으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부끄럽다고 너무 겸손해 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현 사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가정이고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 가는 진정 참된 효부라고 생각하여 숙연해지며 효부 상을 주어도 주위에서 모두 박수치며 칭찬할 맏며느리다.
<자료출처:경남향교재단 사무국>
인터넷함양신문 / 1551woo@hanmail.net입력 : 2015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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