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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구천서원의 내력과 선현들의 덕행을 바로 알자

박찬택 구천서원 원장(前 함양경찰서 읍내파출소 소장)
우인섭 기자 / 1551woo@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02일

 인터넷함양신문
‘구천서원’의 내력과 선현들의 덕행을 바로 알자


구천서원은 함양군 수동면 소재 효우 촌 (효리) 마을에 있다. 구천이란 말은 천상에 구천(龜川)의 이름과 서원 앞의 하천이 거북과 같다하여 구천이라 명 하였다한다. 서원 위쪽 유허비 주변에는 300여년의 수령을 가진 군의 보호수로 지정된 수 그루의 소나무와 배룡나무가 서원의 역사를 증명하듯 장엄하게 서있다.

구천서원은 1701년 숙종 27년에 서원이 건립 되었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고종5년에 훼철되었다. 1919년 후손들이 불망계라는 모임을 갖고 遺墟碑를 세워 작헌례를 거행하여 오다 1984년 5개 문중에서 칠 선생을 봉향 서원을 복원하였다.

서원의 형태는 後廟前學의 서원의 기본 형태로 건축 되었고 현재 칠 선생이 연향되었으며 연행순서는 명심보감 遵禮篇에 조정에는 벼슬만 한 것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한 것이 없다 란 말을 인용 (朝廷如莫爵 鄕黨如莫齒)하여 좌로부터 연장 순으로 春塘朴孟智, 逸老堂梁灌, 琴齊姜漢, 藍溪表沿末, 九拙庵梁喜, 愚溪河孟寶, 西溪梁弘澍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 보름날에 원장과 외·내임 유사가 祠宇에 분향을 하고 있다.

위 춘당 박선생은 반남인으로 군남 대수촌(백천리)에 출생 1454년 (단종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문원교리, 북평사 와 삼가현감 등 역임 한바있으며 세조 때 건강상 이유로 낙향하여 후배양성과 성리학에 전념 하셨다.

일로당 양성생은 효우 촌 에서 출생 1460년 무과에 급제하셨고 선생이 덕천군수로 부임타 귀향길에 암행어사 이색이 도중 행장을 검색 하였는바 소학 책 한질과 이태백과 이두보의 시 2권, 琴一· 學一 베와 이불뿐 짐이 초졸 한지라 암행어사도 검소함에 감명을 받아 사후 왕에게 보고되어 왕은 선생을 청백리로 임명 모던 지방수령들에게는 양선생의 품행을 본받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금제 강선생은 진주인 으로 1496년 진사시에 급제하여 지례·고산 등 현감을 지내시고 특히 서예 필법이 훌륭하여 선생이 향인들의 상소문 을 써 주신 것을 성종임금이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중앙에 중국 사신을 영접 하는 일을 맡아 보게 하신 적이 있었다 한다.

남계 표선생은 신창인 이며 수동 백석(상백)에서 출생 1472년 문과에 급제 하여 선산부사·양관제약 등 벼슬을 역임한바 있으며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과 연좌 되신바있다.

구졸암 양선생은 효우 촌 에서 출생 일로당 양선생의 손자이며 1546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참판 등 내 외직 20 여 곳 을 두루 근무하셨고 1580년(선조13년) 冬至進賀로 중국 조회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마지막을 보내셨다.

임종 시 유언으로 國恩을 갚지 못함이 恨이라 하였다 하였으며, 임금께서는 제문에 병이 들어도 임금을 잊지 않고 사사로움이 없었다(病不忘君 言不及私 ) 하고 나라 사랑의 정신을 기린 바 있다.

우계 하선생은 진양인 이며 병곡 우동(도천)에서 출생 과거에는 뜻이 없었으며 성리학에 전념 하셨고 효성이 남달리 지극 하였으며 喪祭抄禮라는 책을 지어셨다. 사후 효성에 합당하게 나라에서 旌閭를 하사 하였다. 서계 양선생은 효우 촌 에서 출생 일찍이 남명 조식선생을 모시고 학덕을 배웠다.

1592년 임진란당시 사비로 전죽 4만개 장편 전 300부, 헤이미 삼두을 조정에 전달 임란에서 명나라 이여송이 그 화살로 평양성 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다.

위 칠선생의 업적으로 보아 우리 후손들은 그 가르침을 본받아 실천함이 마땅하나 세월의 변천에 젊은 후대들에게 점점 잊혀 져 가는 경향이 몹시 아쉬운 현실이다 군내 각 서원에 모셔진 선현들 이외도 우리 함양을 빛내시고 알려지지 않은 분이 더욱 많다.

현재 함양 향교 옆 연계당 에는 고려 조선시대 대·소과에 급제하신 함양출신자 312명이 그분들이다. 연계당은 그 후손들과 儒林단체에서 협찬 건립한 재실이다.

지난해 함양군의 도움으로 위 분들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안내문을 설치하였고 앞으로도 군의 도움을 받아 현재 삼백 열 두 분의 명함과 업적이 새겨진 비문을 설치할 예정이다.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아무리 변하여도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는 없어 질수가 잆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인 선비들의 참된 가르침과 덕행을 우리는 몸소 실천하고 잊어서 아니 될 것이며 도의와 예절이 날로 퇴색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반듯이 위 분들의 가르침을 우리 스스로가 자성의 기회로 삼아 어려운 이웃과 경로효친 사상이 젊은 세대에게도 널이 파급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21.05.30

박찬택 구천서원 원장(前 함양경찰서 읍내파출소 소장)

우인섭 기자 / 1551woo@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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